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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장

<브루탈리스트> 감상 후기 / 배경 / 역사

 

 
<브루탈리스트> 4~50년대 미국의 생활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들의 옷 건물 등을 멋들어지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역사적인 배경을 알면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되기에 정리해 본다.
 
홀로코스트와 유대인 건축가들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 주인공 라즐로 토트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입니다. 그는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와 미국 사회의 반유대주의에 직면합니다.
  • 유대인 건축가와 브루탈리즘: 영화는 브루탈리즘 건축 운동과 라즐로의 이야기를 연결합니다. 브루탈리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한 건축 양식으로, 전쟁의 파괴를 극복하고 재건하려는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 내 반유대주의와 이민자 경험

  • 반유대주의: 1940년대~50년대 미국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습니다. 대학 입학 제한, 특정 호텔 및 지역에서의 거부, 직장에서의 배제 등이 흔했습니다.
  • 이민자의 어려움: 전후 많은 유대인 생존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엄격한 이민법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정착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영화 속 라즐로도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고군분투합니다.

브루탈리즘 건축 운동

  • 브루탈리즘의 기원: 브루탈리즘은 "béton brut(노출된 콘크리트)"라는 개념에서 시작되었으며, 기능성과 재료의 정직성을 강조하는 건축 양식입니다. 이는 전쟁 후 재건과 실용성을 중시한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 영화 속 건축의 상징성: 라즐로는 자신의 건축물을 통해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트라우마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그의 작품은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바우하우스
라즐로가 졸업한 대학교로 20세기 현대 디자인과 건축을 혁명적으로 바꾼 독일의 예술·건축 학교,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핵심으로 삼았다. 총체적 예술(Gesamtkunstwerk)을 추구하며,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조각·공예·디자인을 통합하려 했다. 교수진은 바실리 칸딘스키(색채 이론), 파울 클레(형태 실험), 마르셀 브로이어(가구 디자인) 등이 참여했다. '기능주의'를 디자인 철학으로 삼으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원칙으로, 과장된 장식을 배제하고 기하학적 단순성을 강조했다. 1933년 나치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으나, 교수진과 졸업생들이 미국 등지로 망명하며 모더니즘 건축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전파했다. 라즐로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바우하우스의 합리주의는 전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창조적 도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라즐로가 수감되었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는 나치 독일의 가장 잔혹한 수용소 중 하나로, 1937년 독일 바이마르 인근에 설립되었다. 잔혹한 처형과 학대, 비윤리적 의학 실험, 강제 노동이 행해졌을 것이다. 라즐로는 이러한 곳에서 아내와 조카가 살아남았을 거란 희망을 갖지 못했을 것. 조피아의 침묵 또한 수용소의 트라우마로 생각된다.
미국의 상업적 착취
사촌 아틸라는 미국에 정착하여 미국적인 마인드로 이미 변하여 상업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가족인 라즐로에게도 사업적 어려움에 닥치자 어떤 배려도 없이 쫓아내는 모습도 보여준다. 헤리슨도 마찬가지이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라즐로에게 매료되지만 목적지향적이며 상업적인 목적을 내칠 수가 없다. 그의 성공만 보더라도 선박 제조 기간 단축이라는 아이디어라는 상업적 효율에 비롯되었다. 예술적인 존경심을 보여주려 하지만 기반에는 돈으로 계층을 나누어 우월 의식과 함께 사람을 얕잡아 보고 다루려고 한다. 라즐로의 변화는 어떻게 보면 해리슨의 착취(미국의 상업성)에 의해 피폐되어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에 대한 절정은 해리슨이 라즐로를 강간하는 것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사랑의 힘
어렵더라도 급식소에서 고든 부자를 배려하던 라즐로는 경제적 어려움, 전쟁 트라우마, 미국인의 멸시, 강간으로 인한 충격 등 외부의 어려움을 겪으며 점점 신경질적이고 이상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나 아내 에르제벳이 쓰러지면서 미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사랑하고 돌아갈 곳, 의지할 곳이 있다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영화가 매우 긴데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고 생략하는 부분이 많다. 그에 반해 또 성적인 묘사는 아주 친절하다. 마지막 조피아의 연설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가 중요했다'라는 대사와 매칭이 된다. 무슨 일이 있었긴 하였으나, 사실 큰 일 일 수 있으나 영화는 그것을 생략한다. 
 
'과정이 아니라 목적지가 중요했다'  과정과 목적지를 잘못 정의하게 되면 이 대사를 오해하게 될 텐데 영화에서는 외부의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겨낸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